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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요약
    카테고리 없음 2023. 5. 10. 20:35

     경제 외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 대신 세계를 움직여 가는 화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문명의 충돌>은 이 문제를 탐구한 책이다. 헌팅턴이 바라보는 장래 세계에서 경쟁과 대항의 주체는 ‘문명’이다. <문명의 충돌>은 1993년 여름 <포린 어페어스(Foerign Affaris)>에 실린 ‘문명의 충돌?’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결과물이다. 논문에서 다른 주제들은 문명의 개념, 보편문명의 문제, 권력과 문화의 관계, 비서구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자각, 서구 문명의 보편성이 야기하는 갈등 등이 있다.  

    저자소개 

     '문명충돌론'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정치학자이다. 군사정치학과 비교정치학 분야에서 학문적 성과를 올리고 이론정치와 현실정치를 두루 체험한 정치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저서로 《제3의 물결-20세기 후반의 민주화》 《미국정치론》 《쉽지 않은 선택-개발도상국에서 정치참여》 《문명의 충돌》 등을 비롯한 17여 권의 저서와 9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군사정책 및 전략, 개발도상국 정치 등의 분야에서 강의와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그는 서구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아시아 유교 문화권의 충돌을 예견한 석학으로 '이념은 가고 문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2008년 12월 24일 81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1부 문명들의 세계

    1) 새로운 세계 정세

     1980년대 말 냉전체제가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지면서 세계 정치는 사상 최초로 다극화, 다문명화되었다. 민족과 국민은 ‘우리가 누구인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해야 했고 종교, 관습, 가치관,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문명이라고 하는 문화적 집단에 자신을 귀속시켰다. 이제 정치, 경제가 아닌 문화가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국가들은 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을 바탕으로 서로 돕거나 경쟁했다. 가장 중요한 국가군은 더 이상 냉전 시대의 세 블록이 아니라 세계의 일곱 내지 여덟 개에 이르는 주요 문명이다. 

     

    2) 과거와 현재의 문명

    인류사는 문명사다. 역사 속에서 문명은 사람들에게 가장 폭넓은 자기 동일성의 틀을 제공했다. 문명의 5가지 특징이 있다. 

     문명과 문명의 관계는 조우 – 격돌 : 서구의 부상 – 교섭 : 다문명 체제 이렇게 세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첫 번째 ‘조우’ 단계에서 문명들은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제한적으로 접촉하였다. 두 번째 ‘격돌’ 단계에서 문명 사이의 제한적 접촉은 모든 문명들에 대한 서구의 압도적인 영향력 행사로 바뀌었다. 대체로 400년 동안 문명들 간의 관계는 서구 문명에 대한 다른 문명들의 종속으로 나타났다. 서구는 사상, 가치관, 종교가 아니라 기술로 세계를 정복했다. 세 번째 ‘교섭’ 단계에서는 모든 문명들 사이에서 다각적인 교섭이 강하게 이루어졌다. 비서구 문명이 서구에 대해 반항했고 국제 체제는 서구를 넘어서 다문명 체제로 확대되었다. 이 시기에 편협하고 자기도취적인 서구 중심의 ‘보편 문명’이라는 개념은 힘을 잃어갔다. 

     

    (3) 보편 문명? 근대화와 서구화 

     냉전 이후 몇몇 사람들은 서구의 소비양식, 대중문화가 퍼지면서 서구 문명이 하나의 보편문명으로 태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깊이도, 타당성도 없는 주장이며, 반박될 수 있다. 

      우선 맥버거를 먹고 랩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비서구인이 서구화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가정은 서구인 특유의 오만한 생각이다. 또한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미디어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를 해석하기 때문에 서구가 글로벌 대중매체를 장악했다고 해도 비서구인은 서구문명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떤 문명이든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는 언어와 종교이다. 따라서 보편 문명이 출현하고 있다면 보편 언어와 보편 종교가 나타나는 추세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특히 많은 이들이 영어가 보편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영어는 어디까지나 문화와 문화의 의사소통을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 정체성과 귀속감을 낳는 원천이 되지 못한다. 보편 언어의 등장 가능성이 희박하듯이 보편 종교가 출현할 가능성 역시 별로 없다.  

     

     한편에서는 보편 문명을 18세기 이후 전개되는 근대화 과정의 결과로 이해한다. 근대의 서구 문화가 세계의 보편문화로 등극하리라는 것이 이 논리의 핵심이다. 이는 서구문명이 곧 근대문명이라는 전제에 의존하지만 근대화 이전의 아득한 옛날에도 서구는 서구였다. 서구 문명의 알맹이는 그리스-로마의 유산,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유럽어, 종교적 권능과 세속적 권능의 분리, 법치, 사회적 다원주의, 대의제, 개인주의 등이 있다. 이러한 관습, 제도는 서구적인 현상이지만 근대 이후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서구의 팽창은 비서구 사회의 근대화와 서구화를 동시에 자극하였다. 비서구 사회의 지도자들은 쇄국, 케말주의, 개량주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했다. ‘쇄국’은 근대화와 서구화를 모두 거부하는 방법이다. 일본은 1542년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줄기차게 쇄국의 길을 걸어왔다. 무기 구입 같은 제한된 형태의 근대화만 허용되고 서구 문화의 유입은 극도로 억제되었다. ‘케말주의’는 근대화와 서구화를 모두 받아들이는 길이다. 케말주의는 근대화는 바람직하고 토착 문화는 제거되어야 한다는 가정에서 나온다. 케말주의는 이슬람 유산을 거부하고 터키의 근대화, 서구화를 위해 노력한 케말 아타튀르크에서 유래되었다. 마지막 ‘개량주의’는 그 사회가 간직한 고유 가치, 제도는 유지하면서 근대화와 조화를 이루겠다는 시도이다. 청조 말기 중국은 ‘중체서용’, 즉 중국 것을 익히되 실용 지식은 서양 것을 익히자는 근본원칙을 세웠다. 

     결론적으로 보편 문명이 등장할 가능성도, 서구 문명이 보편문명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근대화는 반드시 서구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비서구 사회는 자기 고유 문화를 포기하지 않고도 근대화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발전해왔다. ‘단일 문명의 승리’, ‘보편문명의 등장’이 유구한 역사와 함께 형성된 문화의 다양성을 종식시키리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2부 변화하는 문명의 균형

    (4) 서구의 쇠퇴 : 세력, 문화, 토착화

     세계 경제력의 무게추는 빠르게 동아시아로 옮겨가고 있다. 서구의 인구는 점점 감소하고 있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성장률이 완만해졌으며 군사력도 다른 문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반면 비서구의 문맹률은 점점 떨어지고 평균 수명 또한 길어졌으며, 생산력은 급속히 증가했다.  

     문화의 판세는 힘의 판세를 반영한다. 문화는 물질적 성공과 영향력에 뿌리를 둔 것으로 파악될 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비서구 사회의 점증하는 힘이 세계 전역에서 비서구 문화의 부활을 낳고 있다. 이제 비서구 문명은 비서구적 가치의 우월성을 주장함으로써 서구에 대해 반항한다. 이렇게 자기 사회의 가치관과 문화로 복귀하는 과정을 ‘토착화’라고 한다. 

     토착화는 1980년대~1990년대 비서구 사회의 일상의 질서가 되었다. 이슬람 문명에서는 ‘재이슬람화’가 중심주제였고 동아시아 정부들은 ‘아시아화’를 부르짖었다. 토착화는 특히 종교의 부활에서 확인되었다. 

     20세기 후반에는 전 세계에서 종교의 부활 현상이 일어났다. 이 부활을 ‘신의 설욕’이라고 표현한다. 근대화, 세속화로 사람들은 정체성을 잃었고 낯선 군중 속에 섞여버렸다. 그들에게는 정체성의 새로운 뿌리가 필요했고 종교는 사람들의 그런 욕구에 부응하였다. 종교집단은 도시화로 상실된 공동체를 대신하는 작은 사회적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이슬람 문명, 힌두 문명 등 에서는 종교에서 근본적 정체성을 되찾는 ‘원리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원리주의는 정체성, 안정된 사회 구조의 상실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이슬람의 근대화가 아니라 근대성의 이슬람화가 일어났다. 

     

    (5) 경제와 인구, 도전하는 문명

     토착화와 종교의 부활이 범세계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특히 아시아와 이슬람권에서 서구에 대한 도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는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이슬람은 인구증가를 바탕으로 서구 문화와 비교하여 자기 문명의 우월성을 앞세운다.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은 서구와의 세력 균형에 변화를 낳았다. 동아시아인들은 자신이 갖는 가치관의 우월성을 서슴없이 강조한다. 더 이상 서구적인 것을 최고로 간주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일본과 미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나타난 아시아의 자기주장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아시아인은 동아시아 경제가 머지않아 서구의 생산력을 능가할 것이며, 그들의 성공이 우월한 아시아 문화에서 기인했고, 아시아의 여러 문화 사이의 중요한 동질성이 있고, 서구가 쇄신하기 위해 동아시아 모델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시아가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자기주장을 했다면 이슬람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에서 추진력을 얻고 있다. 당분간 이슬람 인구에서 젊은 층이 자지하는 비중이 기형적으로 클 것이다. 근대화 지향의 청년층이 중심이 되어 이슬람화를 주도한다. 이슬람 국가들은 정체성, 의미, 권력의 근원으로서 이슬람을 향해 한꺼번에 돌아서고 있다. 각국 정부는 공립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확대하였고 이슬람 교리를 바탕으로 법령을 수정했다. 이러한 현상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전유물로만 해석하는 것은 16세기 후반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이 유럽의 정치 지형도에 미친 영향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앞으로 몇십 년 동안은 비서구 문명의 힘이 지속적으로 증대하면서 비서구 문명과 서구 문명의 충돌, 비서구 문명과 비서구 문명의 충돌이 나타날 것이다. 

     

     

    3부 문명의 새로운 질서

    (6) 세계 정치의 문화적 재편

     이념과 강대국을 중심으로 정의되던 제휴관계가 문화,문명으로 정의되는 관계로 바뀌고 있다. “너는 어느 편인가?”라는 물음은 “너는 누구인가?”라는 훨씬 근원적인 물음으로 바뀌었다. 냉전시대에 NATO에 함께 소속되어있던 그리스와 터키의 부자연스러운 동맹은 사실상 의미를 잃었다. 

     국가 간의 경제연합도 공통의 가치관과 문화를 바탕으로 할 때만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다. 판이한 가치관을 지닌 3개 문명권의 국가들로 구성된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CE),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국가로 구성된 남아시아 연합은 활동반경을 넓히지 못하고 유명무실한 기구가 되었다. 반면 NATO는 공동의 가치관을 전제로 서유럽 국가들의 중추적 안보 기구로 출범했다. 동아시아에는 중화권, 이슬람권, 불교권, 크리스트교 권 국가들에 의해 발족된 ASEAN이 있지만 문화적 동질성이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의미있는 동아시아 지역 기구는 문화적 동질성이 충분히 확보되야만 무르익을 것이다. 

     이처럼 세계 정치가 문화적으로 재편되어 가면서 국가들은 소속국, 핵심국, 고립국, 단절국, 분열국으로서 관계를 맺는다. 소속국은 한 문명에 문화적으로 완전히 동질감을 느끼는 나라다. 서구 문명에 동조하는 이탈리아가 좋은 예다. 핵심국은 소속국들이 자기 문화의 근원으로 간주하는 나라다. 핵심국의 수와 역할은 문명별로 다르다. 라틴아메리카, 이슬람, 아프리카에는 현재 핵심국이 없다. 고립국은 다른 나라와의 문화적 동질성이 결여되어 있다. 일본 문명의 일본이 그 예이다. 단절국은 문명과 문명 사이의 단층선에 걸터앉은 나라다. 그 예로 탄자니아는 크리스트교 신앙을 떠받드는 본토와 아랍 이슬람 교도 중심의 섬이 분열되어 있다. 분열국은 한 문명 안에서 어엿한 지배력을 가진 단일 문화가 있지만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다른 문명으로 옮겨 가기를 바라는 국가다. 

     문명 이동에 실패한 분열국들에는 러시아, 터키, 멕시코, 호주가 있다. 분열국이 자신의 문명적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데 성공하려면 그 나라의 엘리트가 이러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하고, 일반 대중이 최소한 침묵을 지켜야 하며, 그 나라가 지향하는 문명의 구성원들이 개종자를 수용해야 한다. 터키의 경우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이슬람 문명을 버리고 서구의 일원이 되§5고 애썼다. 이슬람교가 터키의 국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였고 EU 회원국 자격을 획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터키가 지향하는 서구 문명의 구성원들은 이슬람 문화권 국가인 개종자 터키를 수용하지 않았다. 

     

    (7) 핵심국, 동심원, 문명의 질서

     새롭게 형성되는 세계 정치의 판도에서 주요 문명의 핵심국들이 접근과 배척을 낳는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슷한 문화를 가진 나라들끼리 뭉치고 문화적 동질성이 결여된 나라들을 견제하고 있다. 핵심국은 가족 안의 웃어른처럼 친척들을 돕고 지켜야 할 원칙을 제시한다. 

     

    서구의 결속

    냉전 시대에는 전체로서의 유럽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유럽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은 서구 크리스트교가 끝나고 이슬람과 정교가 시작되는 곳에서 끝난다는 대답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유럽을 이렇게 정의하면 서구는 서방 기구들을 중심으로 결속할 수 있다. EU는 문화적으로 서구에 속하며 경제적으로 더 발달한 나라들에게 우선권을 준다. NATO는 탈냉전 시대의 서구 문명의 안보기구로서 군사적 역량, 정치적 민주주의 등 기본 요건을 충족하는 서구 국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한다. 

     

    러시아의 가까운 외국

    러시아는 정교문명의 심장부로서 하나의 블록을 형성한다. 옛 소련의 정교 국가들은 세계무대에서 응집력있는 러시아 블록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이 지역의 5개 나라(아르메니아, 벨로루시, 몰도바, 루마니아, 그루지야) 처음에는 자신만의 독립성을 강조하다가 곧 친러시아 정책으로 회귀했다. 옛 소련 공화국들 중에 가장 비중이 크던 우크라이나는 서구, 정교 상이한 문화를 가진 단절국이 되었다. 

     

    대중국과 공영권

    중국은 역사적으로 자신을 중화지대(한반도, 베트남), 아시아 내곽지대(몽골, 티베트 등), 외곽지대를 모두 포함하는 중화세계로 이해했다. 대중국은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여러 중국들 사이의 경제적 관계까지 확대한다. 대중국 공영권의 출현을 크게 도운 것은 혈연관계, 친분관계에 의해 촘촘히 얽인 연결망과 문화적 동질감이다. 이 문화권에서는 계약, 공적 문서보다 개인적 약속에 의해 신뢰가 좌우된다. 

     

    이슬람 : 중심없는 의식

     이슬람 내부, 외부적 분쟁의 주요 원인은 이슬람 핵심국의 부재였다. 중심없는 의식이 이슬람에게는 약점이 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각국에서 이슬람 부활을 낳았던 요인들은 전체로서의 ‘움마’, 곧 이슬람 문명에 대한 자각을 높였다. 이슬람은 이슬람 세계를 자신의 주도로 결집시키려는 실력 국가들로 나뉘어져 있고, 강력한 핵심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때만 움마가 통합체로 나타날 수 있다는 역설을 지니고 있다. 이집트, 파키스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가 움마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려 애쓰지만 각 나라들은 인구, 지역갈등, 경제력 등 결점을 지니고 있다. 

     

    4부 문명의 충돌

    (8) 서구와 비서구 : 문명간의 문제

     상이한 문명에 속하는 국가들은 대체로 적대적인 경향을 띨 것이다. 거시적 차원에서 보면 서구 대 비서구의 대립이 가장 격렬할 것이다. 서구 문화의 보편성을 관철하려는 서구의 노력과 서구의 현실적 능력 사이에서 부조화가 생겨난다. 비서구 문명의 힘이 증가했기 때문에 서구의 보편주의가 비서구에게는 제국주의로 다가온다. 이들 사이의 갈등은 크게 세가지 문제와 맞물려 있다. 

     

    무기확산

    서구는 핵무기, 화학무기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수단이 확산되지 못하고 함으로써 군사적 우위를 고수하려고 한다. 

     

     인권과 민주주의

    서구는 다른 국가들에게 서구적 개념의 인권을 존중하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하도록 압박한다. 그들은 ‘억압 너머에 민주주의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1995년, 서구 문명의 노력은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두었으며 거의 모든 비서구 문명들은 반감을 드러냈다. 특히 이슬람권과 아시아에서 저항이 심했다. 아시아는 성장하는 경제력을 등에 업고 서구식 민주주의와 인권에 면역력을 갖게 되었다. 특히 1993년 6월 빈에서 열린 유엔 세계 인권 회의에서 서구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민 

    서구는 비서구인 이민자나 망명자의 수를 제한함으로써 서구 사회의 문화적, 사회적, 인종적 틀을 보호하려고 한다. 20세기에 들어와 비서구 사회의 경제 발전이 서구 사회로의 이민을 자극했다. 1970년대까지 유럽 국가들은 이민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1980년대 말부터 높은 실업률, 비유럽계의 대대적인 증가로 유럽인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이민에 대한 유럽인의 우려는 특히 이슬람 이민자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민에 대한 반대여론이 조성되면서 극우주의, 민족주의, 반이민 정책을 표방하는 정당들에 대한 지지도가 늘어나고 있다. 

     

    (9) 문명 중심의 세계 정치 구도

     문명의 갈등은 상이한 문명에 속한 인접국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단층선 분쟁’과 상이한 문명에 속한 주요국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핵심국 분쟁’ 두가지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동질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단층선 분쟁이 핵심국 분쟁으로 발전하거나 문명간의 패권이 교체될 때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이슬람과 서구

     두 문명은 역사적 역학 관계로 보아 흔히 경쟁 관계에 있었다. 유럽은 끊임없이 이슬람의 위협에 시달렸다. 두 종교의 본질적인 차이 때문에 갈등이 일어난다. 종교와 정치를 통합하는 초월하는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이슬람, 세속과 종교를 분리하는 서구 크리스트교. 또 두 종교 모두 일신교로 세계를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원적 구도로 파악하며 보편주의를 내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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